청호웹진 9월호

법률속의 부처님법 이야기 5

民法상 祭祀主宰者와 부처님법

- 서형교 / 청호불교문화원 상임감사 -

page 사찰제사(불교신문)

유산을 물려받을 자격 있는 자, 누구일까?

법원의 조정위원으로 참여하다 보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무너져가는 가족관과 무절제한 탐욕 등 의식변화의 속도를 실감하게 되는데, 특히 부모님 사후의 상속재산에 대한 형제간의 다툼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법원의 조정위원 앞에서 형과 동생이 서로 멱살을 쥐고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도 목격하곤 한다. 이럴 때면 조정위원으로서 “당신들이 몸소 모은 재산도 아니고 부모님이 생전에 자식들 위해 힘써 모아 물려주신 재산인데 그것이 오히려 형제간을 원수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돌아가신 분의 자식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몹시 나무라고 나면 그때서야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상속이 남성 위주로 이루어지고 상속에서 배제되기도 했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상당히 늘고 있는 실정이다.

page 사찰제사(불교신문)

누구나 이제는 세상에 남길 재산이 있다면 살아있는 동안 미리 자식들과 상의하여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리를 해두는 것이 본인 사후에 남은 가족의 평화와 나아가 세상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형제들과 다투어서 상속재산을 차지한 사람이 그가 또 죽고 나면 그 재산을 두고 그의 자식들 또한 서로 다투고 원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러한 시대 상황을 부처님께서는 미리 알고 염려하셨음이 『법구경』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有子有財 ‘이 아이는 내 아들이다’ 또는 ‘내게는 재산이 있다’고
愚唯汲汲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면서 번민한다.
我且非我 벌써 자신조차 제 것이 못 되는데,
何有子財 어찌 아들이나 재산을 제 것이라 할 것인가!
(『법구경』 제5장 「우암품」)

제사와 관련하여 우리 민법 제1008조의3(분묘 등의 승계)는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1)와 600평 이내의 묘토2)인 농지, 족보와 제구의 소유권은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이를 승계한다.”고 규정하면서 민법상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누구이거나 어떻게 정하는지에 관하여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사주재자에 관한 종전 대법원판례의 입장은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장녀가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8. 11. 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합의체 판결(2023. 5. 11. 선고 2018다248626)을 통하여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을 갖는 민법상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연장자가 맡아야 한다는 선언을 하며, 종래 판례에 따라 판단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사건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원고A는 남편과 1993년 결혼해 장녀인 원고 B, 차녀인 원고 C 등 2명의 딸을 두었다. 이후 남편은 원고 A와의 혼인 관계가 계속 중이던 2006. 11.경 내연녀인 피고와의 사이에 아들 D를 낳았다. 2017년 남편이 숨진 후 내연녀는 다른 유족과 합의하지 않고 유해를 파주의 어느 추모공원에 봉안했다. 이에 원고 A와 두 딸은 유해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1심법원과 2심법원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을뿐더러, 현대 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했기 때문에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또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제11조, 개인 존엄과 양성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헌법 제36조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2008년의 “제사 주재자는 장남 또는 장손자가 되고, 아들이 없을 경우 장녀가 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15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래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을 중시한 적장자 우선의 관념에서 벗어나 헌법 이념과 현대사회의 변화된 보편적 법의식에 합치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page 금선사 영가를 모신 전각

아울러 이 사건 속의 숨은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망인이 남긴 재산에 대한 상속인들 간의 탐욕이 보이고, 내연녀에게서 태어난 미성년자이지만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심리가 보이고, 망인에 대한 본처와 내연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애증의 그림자가 숨어 보인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 제24장 「애욕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제 아무리 질긴 밧줄이라도 그것들보다 더 질기고 강한 족쇄가 여기 있다. 욕망과 재물에 대한 탐심 그리고 남편(아내)과 자식들에 대한 애착, 이것이야말로 가장 질기고 강한 족쇄다.”

“하물며 어리석은 사람이 어떻게 이것을 알겠는가. 이 탐욕의 독은 몸을 망치고, 친족을 망하게 하고, 그 해는 중생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어찌 다만 부모에게서 그치겠는가.”

그리고 『육방예경』에서는 부모님을 모시는 다섯 가지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아들은 다섯 가지로 동쪽 방향인 부모님을 섬겨야 한다. 첫째, 부모님은 나를 양육하셨으니 부모님을 봉양할 것이고, 둘째, 주어진 의무를 다할 것이며, 셋째, 가문의 전통을 이어갈 것이고, 넷째, 유산을 물려받음에 모자람이 없도록 할 것이며, 다섯째,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분들을 위해 보시를 베풀 것이다.

제사 주재자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변경을 보며 백중재일이 진행되고 있는 이즈음에, 부모님 사후에 유산을 물려받음에 모자람이 없었는지 그리고 그분들을 위하여 과연 보시를 베푼 적은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로 삼고 싶다.

1) 금양임야 : 선조의 분묘가 있는 곳으로서 나무나 풀 등을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한 임야


2)묘토: 분묘의 수호 또는 관리나 제사의 재원이 되는 토지로서 특정 분묘에 딸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