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9월호

문화로 읽는 불교 5

빈자의 공양

- 주수완 / 우석대학교 교수 -

page 사천왕의 음식 공양의 흔적을 담고 있는 마곡사 서방광목천왕상.
원래는 재물을 담당하는 북방다문천왕의 도상이다.

가난한 아이, 부처님께 흙공양 올린 공덕으로 황제가 되다

앞서 사천왕이 부처님께 발우를 만들어 바친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부처님에 대한 공양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였기에 특히 간다라 지역에서는 이를 주제로 많은 미술작품이 제작되었다. 미술작품이지만, 실상은 불교 후원을 홍보하는 일종의 광고 역할을 했을 것이다. 광고라는 말이 너무 상업적으로 들린다면 PR이라고 해도 좋다. 여하간 불교에 대한 공양과 보시를 권장하는 마케팅의 일환인 셈이다. 한국 사찰의 사천왕은 모두 갑옷을 입고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어서 공양이나 기부와는 무관한 듯하지만, 드물게 공주 마곡사의 사천왕상 중 서방광목천왕은 이런 공양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 서방광목천은 한 손에 탑을 들고 있지만, 마곡사 서방광목천은 연잎 접시에 과일처럼 보이는 여러 먹거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천왕의 공양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거물들의 통 큰 기부활동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기부를 보면서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야”라고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좋지만, 자칫하면 기부나 자선이란 그런 돈 많은 사람들의 일이고, 나 같은 평범한 월급쟁이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간주해 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마케팅 효과는 떨어지고 만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모범적인 사례를 보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기부와 자선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 평범한 사람들의 기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page 원숭이왕의 꿀 공양 장면. 시크리 출토 불탑의 부조.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

영웅적인 사천왕의 발우 공양 이야기가 한쪽 끝에 있다면, 반대쪽 끝에는 가난한 집 아이의 공양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들과 마을에 나아가 탁발을 하고 계셨는데, 이때 한 가난한 집의 어린 아들은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있는 집 아이였다면 레고나 플레이 스테이션을 가지고 놀고 있었겠지만, 이 아이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모래판에서 두꺼비집 만들기 놀이나 할 수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난한 집안이었음에도 부처님께 공양하면 그보다 더 많은 공덕이 돌아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탁발을 나오신 부처님께 뭔가는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이 아이는 자신이 가지고 놀던 흙 한 움큼을 부처님 발우에 담아드렸다. 옆에 있던 제자들이 깜짝 놀라 아이를 나무랐을 것이다. 밥그릇에 흙을 담다니.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제자들을 말리며 말씀하셨다. “이 아이가 내게 준 것은 비록 보잘 것 없는 흙이지만, 이 아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아이는 이 공덕으로 다음 생애에 인도를 통일하는 제왕이 될 것이다.” 이 설화 속 아이가 바로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드신 후 100년 뒤에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이라는 훈훈한 결말이다. 결국 가진 것이 없어도, 공양하는 물품이 보잘 것 없어도, 마음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지금으로 말하면 저렴한 금액이라도 시주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하는 셈이다.

page 아쇼카왕의 전생의 공양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불전도. 간다라 시대.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당시 브라만교는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다. 바이샤나 수드라, 즉 평민이나 노예계급이 주는 공양은 받지 않고 대신 크샤트리아 계층이 제공하는 값비싼 공양과 시주에 집중하는 전략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날이 갈수록 가격이 치솟는 명품 브랜드들의 차별화 전략인 셈이다. 당시로서 신흥종교였던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고 감동을 받은 한 부유한 장군이 앞으로는 브라만 교단이 아닌 불교교단에 시주하겠다고 하자, 석가모니는 그 장군이 기존 커뮤니티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염려되어 시주는 브라만 교단에 계속하되, 가르침만 불교 교단에 와서 받아도 좋다고 신경을 써주실 정도였다. 그만큼 부유층은 그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다.

더구나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석가모니는 카스트 제도를 뛰어넘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추구했기에 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공양과 시주를 받는 전략이 필요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유니클로나 다이소, 혹은 노브랜드 전략과 유사한 셈이다. 아쇼카왕이 전생에 가난한 집 아이였을 때의 설화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도 기부를 권유하며 전화 한 통화에 1,000원씩 기부되는 방식이나, “당신의 커피 한 잔 가격이 극빈국 아이 며칠 분량의 식사값입니다”라는 홍보 문구를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통큰 기부를 유도하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최소단위의 기부를 유도하여 규모를 키워나가는 방식이다.

page 발우는 공양에 있어 일종의 최소단위를 규정하게 함으로써 한 끼 식사의 공양만으로도 충분한 공덕이 된다는 것을 선언한 셈이다. 발우에 음식을 공양하는 불자. 파키스탄 스와트 박물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방식도 있다. 동물들이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원숭이가 부처님께 꿀을 공양했다는 설화다. 왜 이런 설화가 생겼을까? 사천왕의 멋진 기부, 아쇼카왕의 전생의 코 묻은 공양을 보면서도 공양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 답답한 사람들을 위한 최후의 설득인 셈이다. 즉, 공양의 큰 공덕은 원숭이도 알고 있고, 그래서 원숭이도 기꺼이 하는 공양인데 사람인 당신이 이래도 정말 안 하겠는가 정도의 뜻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처럼 적은 단위의 공양도 받는다고 선언하셨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이 큰 돈을 시주해버리면, 괜시리 비교되는 것이 싫어 막상 본인은 적은 돈을 꺼내기 보다 아예 시주나 기부를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공양에 있어 일정한 적은 단위를 공양의 기본으로 명시하여 그 공양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인식하도록 하셨다. 그것이 바로 발우를 제정한 근원적인 이유가 아닌가 한다. 수행자들은 밥을 더 많이 주어도 어차피 먹을 수가 없다. 따라서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수행자가 들고 다니는 밥그릇에 한 끼 식사 정도만 채워주는 것이 일종의 기본이 된 것이다. 이렇게 기준이 정해지면 누가 더 많이 내더라도 그것이 특별한 것이고, 한 끼 식사를 공양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또한 공양을 위해 어느 정도를 준비해야하나 고민도 줄어들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의 고민을 줄여주고 결정을 쉽게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마케팅 전략의 하나임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