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9월호

여행으로 만나는 인도신화 이야기 5

남인도 코친(Cochin)의 카타칼리(kathakali)공연과 키차카 바드암(Kichaka-vadham) 신화

- 김진영 / 서강대학교 교수 -

인도의 4대 전통무용, 카타칼리(음악이 있는 이야기)

page 케랄라 카타칼리센터 입구 전경이다. 공연티켓은 안내센터에서 미리 예매해야 한다.

코친은 인도 남서부 케랄라주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포르투칼의 대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에 의해 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방문해 보면 거리가 깔끔하고 색감 있는 카페가 많아 초보 여행자의 마음도 사로잡는다. 바닷가에는 거대한 중국식 어망이 드리워져 있는데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 시대에 전해져 현재까지도 코친의 특색있는 풍광을 만들어낸다. 포르투갈 식민지를 거쳐 네덜란드와 영국의 통치를 받은 무역항인 탓에 어수선하면서도 남인도 특유의 정적인 느낌도 살아있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page 케랄라 카타칼리센터 입구 전경이다. 공연티켓은 안내센터에서 미리 예매해야 한다.

코친에 도착해서 관광안내소에 가면 코친의 문화여행 패키지를 즐길 수 있는 각종 티켓을 판다. 이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이 무용극 카타칼리(Kathakali)이다. 카타(katha)가 ‘이야기’, 칼리(kali)는 ‘음악’을 뜻하므로 ‘음악이 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공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카타칼리는 케랄라주의 전통무용으로 인도 4대 전통무용에 들 정도로 그 역사가 유구하다. 남성만이 연기할 수 있는 무언극이며 강렬한 분장 탓에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코친여행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관광 유산으로 국내 항공사가 인도의 대표적 관광명소를 소개한 광고에서도 코친을 카타칼리로 소개한 적도 있다. 무엇보다 카타칼리공연이 인기 있는 이유는 인도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와 『라마야나(Rāmāyana)』의 흥미로운 신화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카타칼리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대표적인 인도신화는 ‘키차카 바드암(Kichaka-vadham)’과 ‘바카 바드암(Baka-vadham)’이다. 두 이야기 모두 ‘살해’나 ‘죽임’을 뜻하는 바드암이라는 말이 붙는데,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대표적 악인인 키차카와 식인(食人) 아수라(asura)인 바카의 살해 이야기라는 뜻이다. 키차카와 바카 모두 판다바(Pāṇḍava)의 오형제 중 둘째 비마(Bhima)에게 살해당한다.

page
page 키차카와 싸우는 비마의 모습이 보인다.
말리니로 변장한 비마는 여자옷을 입고 있다.

필자가 케랄라 카타칼리센터에서 본 카타칼리는 키차카 바드함이다. 1917년 제작된 인도 무성영화 “키차카 바드암(Keechaka Vadham)”과 내용이 같다. 키차카는 인도신화의 대표적 아수라인 바나(Bāṇā)가 환생한 폭력적인 호색한의 이름이다. 마하바라타의 주인공인 판다바형제들은 주사위 놀이에서 패배한 후 긴 유배를 떠났다가 마지막 해 비라타(Viraṭā)왕의 맛시야(Matsya)왕국에서 신분을 감추고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장차 여왕이 될 드라우파디(Draupadī)는 말리니(Mālinī)라는 시종으로 변장하여 수데샤나(Sudeshana)여왕과 웃타라(Uttarā)공주를 돌보았다. 어느날 왕비의 남동생 키차카는 궁전에서 우연히 마주친 말리니에게 반하여 누이에게 그녀를 달라고 간청한다. 여왕은 말리니는 그녀의 자유의지에 반하여 세상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녀를 보호하는 남편들이 있다는 소문을 알려주면서 키차카에게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술에 취한 키차카는 여왕의 조언을 무시하고 말리니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강제로 포옹하고 추행한다. 그를 피하고자 말리니는 변장한 첫 번째 남편 유디스티라(Yudhiṣṭhira)가 비라타왕과 주사위놀이를 하는 왕궁으로 홀로 도망간다. 홀까지 따라온 키차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녀를 보호해 줄 이가 아무도 없다며 큰 소리로 조롱하면서 재차 그녀를 모욕한다. 비라타왕은 이 모두를 목격하지만 군대사령관이자 잔인한 키차카의 보복이 두려워 가만히 있었고 유디슈티라도 마찬가지였다. 키차카에게 당한 이 모든 모욕에 분노한 드라우파디는 궁전 주방에서 요리사로 변장한 판바다의 둘째 비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비마는 드라우파디에게 키차카를 왕궁의 홀로 몰래 불러내라고 말하고 말리니는 이를 이행한다. 말리니의 은밀한 초대를 받고 흥에 취한 키차카가 홀에 도착한다. 술에 취한 키차카는 어두운 홀에 있는 여인을 말리니라고 착각하고 덥석 그녀를 안는다. 하지만 그 여인은 말리니가 아니라 비마였다. 비마는 이내 엄청난 힘을 드러내면서 키차카와 격투를 벌인다. 홀 한쪽에서 이 난투의 굉음을 잠재우기 위해 연주자로 변장한 셋째 아르주나(Arjuna)가 큰 소리로 북을 연주한다. 왕궁 홀에서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용감하고 숙련된 두 전사의 싸움은 맹렬했지만 더 강력한 비마가 맨손으로 그를 때려죽인다.

page 공연전에 배우들의 분장모습을 볼 수 있다. 종이를 겹겹이 대어 주인공 키차카 얼굴을 만드는 장면이다. 녹색 얼굴 바탕에 붉은 색 칼모양이 그려진다.

키차카는 남편있는 여인을 탐하면서 왕족이라는 신분을 악용해 그녀를 추행하고, 도망친 그녀를 대중 앞에서 재차 모욕한다. 본래 키차카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캐릭터인데 드라우파디와 얽힌 이 에피소드에서는 비겁하고 악랄하기까지 하다. 약자를 괴롭히고 희롱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악인을 처형하는 것은 판다바의 형제 중에서 비마로 설정된다. 비마는 크샤트리아계급을 대표하는 강철인간이다. 호전적이고 단순하며 드라우파디가 고통에 빠지면 그녀 곁에서 울분을 토하며 과감히 나서서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마하바라타의 주인공이 첫째 유디슈티라이고, 바가바드기타의 주인공이 셋째 아르주나인 반면 카타칼리의 주인공은 바로 둘째 비마이다. 키차카 같은 악인은 지혜로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써 강하게 응징한다. 이 공연의 높은 인기는 대중이 쉽게 납득하고 환호할 수 있는 단순한 스토리라인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카타칼리공연은 예정된 공연시간보다 빨리 입장할 수 있다. 공연시작 전에 배우들의 메이크업 비법이 공개되는데 상당히 길지만 재미있다. 배우들이 얼굴에 바르는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천연염료를 묻힌 종이다. 배우의 얼굴에 종이를 겹겹이 포개어 화려한 마스크를 만드는 과정이 또 다른 볼거리이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지만 주인공이 궁금하면 얼굴이 녹색인 사람을 찾으면 된다. 청개구리색 같은 선명하고 밝은 녹색(pancha)이다. 인도미학에서 녹색 얼굴은 신성한 출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카타칼리 주인공들은 모두 얼굴색이 녹색이다.

하지만 선신과 악신, 선인과 악인이 모두 고귀한 신분이라면 선악을 구분하는 무대기법도 있어야 할 터이다. 악인이 주인공이 될 때는 녹색 얼굴 바탕에 붉은 색 칼(Knife) 모양을 그리는데 이를 캇티(katti)라 한다. 왕족이지만 사악하고 뻔뻔한 키차카 같은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면 녹색 얼굴 가운데 붉은 칼 모양을, 코와 이마 주변에 흰색 혹을 여러 개 그려 넣어 그들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묘사한다. 이와 반대로 신성하고 영웅적인 아르주나나 라마 같은 캐릭터가 주인공일 때는 눈 주변에 검은 반점을 그리거나 이마에 비슈누신의 신성한 표식 또는 왕관(Kirīṭa)을 그려 구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