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웹진 9월호

음악의 전당 5

낭만으로의 초대, 슈베르트

- 김준희 / 인천대학교 교수 -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에 손을 내밀어 보자.

음악에 있어서 낭만주의는 대략 19세기를 뜻한다. 이 시대는 산업혁명 이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을 즐길 수 있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주로 궁정이나 귀족들이, 고전주의 후반기에는 더 많은 중산층들이 음악을 즐겼다면, 낭만주의 시대에는 정말 누구나 할 것 없이 예술을 접할 수 있었다. 많은 도시에 연주회장이 건립되고, 도시 관현악단이 설립되어 음악회 관람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고전시대 이후 피아노의 생산이 활발해지고, 각 가정의 응접실에 피아노를 놓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중산층 이상에서는 가정음악회를 열어 노래를 부르고 실내악을 연주하는 아마추어 음악애호가들이 생겼다.

page 슈베르트 초상화

이렇듯 여러모로 풍성했던 낭만주의 음악 사조의 시작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9)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음악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탁월한 미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년합창단에서 노래할 수 있었다. 그가 활동했던 빈 소년 합창단은 현재 하이든, 모차르트, 브루크너와 함께 슈베르트의 이름을 딴 네 개의 팀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슈베르트는 변성기를 지나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주하며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작곡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곧 프리랜서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내성적이었는데, 작품들도 수줍고 겸손한 그의 성격처럼 유연하고 서정적이었다.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한 베토벤과 거의 동시대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으로 매우 달랐다. 규모가 큰 장르의 음악보다는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잘 어울렸던 그는 시(詩)와 음악을 결합시키는 예술가곡(Lied)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의 초기 작품인 <들장미>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한 소년이 보았네. 들에 핀 장미, 갓 피어 아침처럼 고운 그 장미를. 소년은 가까이 보려고 달려갔네. 큰 기쁨으로 바라보았네. 들에 핀 그 장미를.” 아무 걱정 없는 소년 슈베르트의 모습과 같이 천진하고 명랑한 느낌이다. 그는 이때 평생의 벗이 될 소중한 친구들을 만났고, 시인, 철학자, 법률가, 화가 등으로 활동하던 그들은 훗날 슈베르트를 위해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라는 연주모임을 만들어 그의 활동을 지지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고, 허약했던 슈베르트에게 큰 힘이 되는 친구들이었다.

page 슈베르트의 생가

슈베르트의 가장 유명한 가곡 중 하나인 <송어>는 1817년 이 모임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독일 낭만파 시인 슈바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거울 같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화살보다 더 빨리 헤엄쳐 노네. 나그네는 길을 멈추고 언덕에 앉아 거울 같은 강물의 송어를 바라보네’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서정적이면서도 밝은 느낌을 가득 담은 이 작품은 당시의 유명한 바리톤인 미하엘 포글이 불렀고, 그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회가 될 때마다 그의 곡을 계속 연주했다.

슈베르트는 시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사에 곡을 얹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위해 만들어낸 그의 선율들은 그에 못지않게 서정적이고 풍부한 감성을 담은 피아노 파트와 잘 어우러졌다. 이전까지 피아노 파트는 단순히 성악가를 보조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슈베르트는 피아노 파트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어 곡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는 평범한 시를 최상의 가곡으로 변화시키며, 이제껏 나온 적 없는 극적이고 표현적인 음악으로 재탄생 시켰다. 슈베르트의 가곡은 자연에 관한 것부터 극적인 대화, 민속적인 선율, 매우 깊은 정서적 강렬함을 담은 노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을 담고 있었다. 그가 손대는 모든 것들은 음악으로 변했다.

page 빈 소년합창단

슈베르트는 <송어>를 작곡한 2년 뒤 여름 포글과 함께 슈타이어 지역에 머물며 연주여행을 겸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부유한 광산업자 파움가르트너를 만났고,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이기도 했던 그는 가곡 <송어>를 듣고 감동하여, 이 노래의 주제를 넣은 실내악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다. 슈베르트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피아노 5중주곡을 만들면서 네 번째 악장에 <송어>의 선율을 넣었다. 다섯 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된 4악장은 가곡과 더불어 슈베르트의 대표작이 되었고, 청량함이 느껴지는 이 곡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는 수식어답게 3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600곡에 이르는 가곡을 작곡했다. 그는 <마왕>이나 <실 잣는 그레첸> 등의 단독 가곡 이외에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1824)>, <겨울나그네(1827)> 그리고 <백조의 노래> 등의 가곡집을 남겼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와 <겨울나그네>는 모두 뷜헬름 뮐러의 시에 가사를 붙였고 첫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연가곡집’이라고 부른다.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 사후에, 그의 친구들이 생전에 출판하지 못했던 곡들을 모아 펴낸 가곡집으로 ‘세레나데’가 이 곡집에 들어있다.

우리가 잘 아는 ‘보리수’는 <겨울나그네>에 포함된 곡이다. 1827년 쇠약해진 슈베르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이 곡집을 써내려갔다. 그 무렵 그는 평소 가장 존경하던 베토벤을 만날 기회를 가졌고, 슈베르트의 작품을 본 베토벤은 그의 음악적 능력에 매우 감탄했다고 한다.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썼지만 사회적 명망을 얻지 못했던 슈베르트는 평소 존경했던 베토벤의 인정을 받아 기뻤지만 이미 병들고 초라해진 모습에 상당히 속상했다. 일주일 뒤 베토벤의 사망 소식을 들은 슈베르트는 더 일찍 그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하고 슬퍼하며, 장례식에서 베토벤의 관을 운구하기도 했다.

page 가곡 송어의 자필 악보

겨우 31년간의 짧은 생애 동안 1000여 곡을 만들 정도로 다작을 했던 슈베르트는 머릿속에서 쉴새 없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떠올라 곡을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근거리에 살았던 베토벤을 만나는 것도 주저할 정도로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음악가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낭만주의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지만, 생전에 그 풍족함을 누리지 못했던 슈베르트. 그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매주 아름다운 곡을 발표하고 유튜브로 팬들과 소통하며 어느 인플루언서 못지않은 큰 인기를 얻어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입추가 지나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마치 슈베르트의 가곡의 청량함과 서정성을 소개하는 ‘낭만으로의 초대’ 같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차분한 계절이 오는 이 때,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에 적극적으로 다가가 보면 어떨까.